책의 현금인출기 ‘에스프레소 책 인쇄기’
글 홍성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 박사과정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침체의 여파가 미국 출판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셀프출판업계는 오히려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존 출판업계가 인원감축 등으로 새로운 작가발굴을 꺼리면서 양질의 작가들이 셀프출판으로 눈길을 돌리는데다 인터넷의 활성화와“에소프레소 책 인쇄기(EBM)”이라고 불리는 주문인쇄방식(POD: Print on Demand) 설비의 발달 등으로 인해 매해 20~50%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7년 미국 <타임>지에 의해 올해의 기술로 선정된 EBM기술은 구텐베르그의 인쇄기 발명과 버금가는 혁신기기로 꼽히고 있다.
셀프출판시대
최근 CNN방송에 소개된《침착한 엘리스》의 저자 리자 제노바의 일화는 셀프출판의 현상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녀는 1년 6개월에 걸쳐서 50세의 하버드대 교수가 알츠 하이머병에 걸려 투병하는 소설을 집필한 뒤 여러 출판사에 접촉을 했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한결같이“내용은 좋은데, 일반독자들은 알츠하이머 환자애기에 그리 관심을 일반독자들은 관심을 가질까”라며 한결같이 퇴짜를 놓았다. 그래서 그녀는 고민 끝에 셀프출판회사에 연락, 출판하기로 했다.
당시 일부 출판사들은“셀프출판을 하면 작가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말리기도 했다. 그녀는 450달러를 들여서 책을 출판해서 아마존닷컴 등에 책을 판매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 아마존닷컴의 독자리뷰 등에서 호평이 나왔고, 이어 <보스턴글로브> 등 유력신문의 북리뷰에 실리기도했다. 그러면서 판매가 늘어나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대형출판사인‘사이몬 앤 셔스터’에서 재출판하고 싶다며 접촉해왔다.
제노바는“만약 자신이 쓴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느낌이 있다면 대형출판사의 거절에 구애받지 말고 셀프출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셀프출판으로 유명인사가 된 사람은 제노바뿐만 아니다. 지난 2003년에는 홈스쿨교육만 받았던 20세 크리스토퍼 패오리니가 용을 등장시킨 판타지 소설《이라곤》(Eragon)으로 소설을 셀프출판 한 뒤 크노프 출판사와 재계약을 맺었으며, 2006년에는 캐서린 맥고완은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다빈치코드-막달라 마리아 시리즈》를 발매했다. 또 지난해 8월 월리엄영의《샤크》( The Shack)는 이미 100만부이상 팔렸다. 가히‘셀프출판 신데렐라’라고 부를 만 하다.
셀프출판 인쇄시설을 갖춘 회사들도 셀프출판 작가들 덕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령, 루루닷컴(lulu.com)이나 아더 솔루션스 등은 최근 몇년간 매년 30%이상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누구든지 어떤 주제와 상관없이 원고만주면, 출판을 한다”라는 원칙으로 운영된다. 물론 비용은 저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또 기존의 자비 출판처럼 한꺼번에 2,000 ~ 3,000부 찍어내지 않고 필요한 권수만 찍어내기 때문에 재고에 대한 걱정이 없다. 게일 조든 루루닷컴의 홍보담당자는 “셀프출판은 ‘표지사진이 잘못됐다, 내용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며“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출판 저작물의 모든 것을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한다.
가령 루루닷컴에서 책을 출간한다면 권당 제작비용은 4~19달러가 소요된다. 가격차이는 쪽수와 표지를 하드커버로 할 것이냐, 페이퍼백으로 하느냐 등에 달라진다. 만약 작가 스스로 책의 표지 디자인, 편집, 마케팅 등에 자신이 없는 경우에는 출판사가 대행해준다. 이 경우, 299달러부터 시작되는 편집 및 마케팅 패키지가 있다. 루루닷컴의 경우, 지난 2002년 설립 이후 지난 7년동안 무려 82만 종류의 책을 출간했다. 매주 5,000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아서 솔루션스 역시 지난 1997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7만여 명의 작가들로부터 모두 10만 종류의 책을 출판했다. 이 회사의 케이스 오그렉 부사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책을 출판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며 “아마도 경기침체기에 셀프출판으로 돈을 벌 생각인 듯 싶다”고 설명한다.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이라는 인구 오만명의 시골마을에 위치한 아서 솔루션스는 지난 1월 엑스라이브리스를 인수한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캐나다의 트래포드라는 셀프출판사를 인수, 점차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책의 종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셀프출판의 덕분이다. 또 셀프출판을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존 그리샴처럼 유명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다 존 그리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셀프 출판의 경우 평균 100권 정도가 팔린다. 저자에게도 공짜로 책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작가들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서는 직접 구매해야 한다. 또 셀프출판의 경우, 저자가 편집권도 가지기 때문에 종종 오자나 문법적 오류 등도 발견되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과 POD의 발달
셀프출판의 활성화는 인터넷의 활성화와 주문에 따라 인쇄를 할 수있는 POD기술의 발달에서 기인한다. 특히 지난 2005년 아마존닷컴에서 적극 셀프출판 책들의 판매에 나서면서 일부 계층이나 연령대, 직업인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주제도 미 전역으로 팔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보더스 같은 서점체인점에서도 루루닷컴과 연계해서 셀프출판책들도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판매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출판사들에서는 책의 권당 단가가 비싸고, 종이질이 인쇄본보다는 떨어진다는 이유로 POD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 실정이지만 셀프출판업계는 대부분 POD 시스템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인쇄로 출판된 책의 25% 이상이 소비자의 손에 건너가지도 못한 채 반품되어 폐기처분 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꼭 필요한 만큼만 찍어내는 POD 시스템이야말로 셀프출판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셀프출판의 가격을 낮추면서도 인쇄의 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인쇄기계가 속속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들은 아마존 ‘킨들’ 이나 소니사의 디지털북, 또는 아이폰 (iPhone) 등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전자책은 배포의 수월성과 한번 제작 이후에는 추가비용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어가고 있다. 더구나 현재 젊은세대일수록 이러한 전자책이나 컴퓨터 등을 통한 독서행태에 익숙해져서 앞으로는 더욱 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오고렉 아서솔루션스 부사장은 “POD 시스템으로 인해서 책이 시장에 배포되는 시기가 매우 짧아졌다” 며 “더구나 독자와 비평가 등 시장의 반응을 직접 들은 뒤에 추가, 주문을 하기 대문에 불필요한 출판재고를 없앨 수 있다”고 설명한다.
POD 시스템의 결정체는 에소프레소 북 머신(Espresso Book Machine: EBM)이라고 불리는 인쇄기다. 지난 2007년 <타임>지에 의해‘올해의 발명품’이라고 선정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EBM은 출판사보다는 대학 도서관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미 시카고에 위치한 미시간대학교 도서관의 경우, 지난해부터 에소프레소 북 머신을 구입해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을 5~7분만에 인쇄, 제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 측은 저작권법을 고려, 1923년 이전에 출간된 책들과 정부간행물 등 저작권의 예외서적 등을 10달러 정도로 저렴하게 재인쇄 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펜실베니아대학, 에모리대학, 코넬 대학 도서관측에서도 이러한 에소프레소 북 머신을 이용한 POD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20일부터 3일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북페어에서는 블랙웰 출판사가 새로 구입한 EBM이 설치돼 3분동안 300페이지를 인쇄, 제본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블랙웰 출판사에서는 이미 절판된 책을 소량으로 찍어내거나 희귀본의 서적 인쇄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EBM 도입에 17만 5000달러를 투자한 블랙웰 측에서는 1년 이내에 투자금액을 전액 회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EBM이 쇠퇴하는 지역 서점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EBM이 설치된 동네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바로 인쇄, 제본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동네서점이라도 수백만 권의 장서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영국 신문 <가디언>은“500년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도입 이후 가장 큰 기술적 혁신”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호주, 이집트 등에서 사용화에 들어가면서 일부에서는 책의 현금인출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셀프출판의 영역이 커지면서 오는 11월 7일에는 뉴욕에서는 아예 ‘셀프출판 엑스포’(www.selfpubbookexpo.com)가 열릴 예정이다. 출판전문가인 디아나 맨서, 캘런 멘더 등이기획한 이 엑스포에서는 다른 북페어와는 달리, 셀프출판 회사들와 셀프출판 작가들에 포커스를 맞춰서 진행된다. 셀프출판으로 이미 스타덤에 오른 인기작가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성공담을 듣는 섹션도 마련됐다. 하퍼콜린스 등의 출판사에서 경력을 쌓은 맨서는 “셀프출판은 최근 출판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 중에 하나” 라며 “이제는 관련 출판사와 작가들이 모여서 고객들과 함께 만나는 장을 만들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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